파울리는 쓰레기 집하장에 서있었다. 청소부들이나 입을 법한 새파란 점프 수트를 입은 모습은 한 치의 위화감도 들지 않아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점이 파울리는 불만이었다. 감쪽같은데? 동료하나가 킬킬 웃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둘러본 파울리는 가로등 아래 반짝이는 감시카메라를 보며 중지를 세웠다. 치직-작은 이명과 함께 무전이 날아들었다.

-눈에 띄는 짓 좀 하지 마.

네에, ."

화면을 보고 있었던 건 동료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얌전히 중지를 접은 파울리는 화풀이로 쓰레기봉투를 걷어찼다. 바스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었다. 

-파울리.

제 상사의 호명에 어깨를 으쓱한 파울리가 두 손을 들어 올려 알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1분 전입니다. 기계음 같은 카운트에 품안을 뒤진 파울리가 종이더미를 꺼내들었다. 눈앞에 있는 건물의 도면이었다.

-도면은 제대로 외웠지?

눈감고도 찾아갈걸요.”

오버하기는. 내용은 핀잔이었지만 마음이 놓였는지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이었다. 라이터를 꺼내 몇 번 찰칵이자 다행히도 단번에 불이 붙는다. 그 김에 파울리는 담배도 한 대 피워 물었다.

-정말 혼자로 괜찮겠어?

, 그래봤자 증원은 없을 거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면서 뭘. 머리를 긁적이는 그에게 사과가 떨어진다. 미안하다. 대신 이번일 끝나면 휴가 보내줄게. 그 말에 파울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짜요? 진짜? 며칠? 얼마나?”

-엄머, 라스베가스까진 못 가게 할 거야.

그럼.. 하고 말끝을 흐리는 파울리에게 상사가 못을 박았다. LA도 카지노도 안돼. 파울리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30. 다시 카운트가 울린다. 담배를 건물 외벽에 비벼 끈 파울리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은박지를 벗겨낸 껌을 입에 넣었다. 15. 몇 번 씹지 않아 딱딱하던 껌이 금방 말랑해진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났다. 5. 그는 작업복과 같은 색의 캡 모자를 집어들었다.

-4.3.2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문 안 쪽 복도가 정전이 지나가듯 잠깐 반짝였다.

“1.0. 진입합니다.”

모자를 눌러쓰며 파울리는 그 안으로 향했다.

'파티는 25층 최상층에서 열려. 초대장이 있어야하지만, 자선행사라 접근이 어렵진 않을 거야. 타겟은 10분 전 저택에서 출발, 현재 교통상황을 고려했을 때 15분 정도면 도착할 거다.'

복도는 비어있었다. 짝, 짜악 제가 씹는 껌소리가 울릴 정도의 적막한 복도를 파울리는 느긋하게 걷는다. 왼쪽, 오른쪽 무전의 안내보다 한발 먼저 방향을 트는 그는 누가 봐도 미적거리는 직원정 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코너를 돌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서있다.

-행운을 빈다.

마지막 무전이었다. 할일을 마친 수신기를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파울리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다행히 더 올라타는 사람 없이 문이 닫힌다. 20층. 객실청소원이 갈 수 있는 최상층을 누른 그는 타겟의 정보를 되뇌였다.

'다르디안. 32세. 182cm. 아랍계. 현재 친환경에너지에 투자중.'

언제부터 핵에너지가 친환경에너지로 바뀌었는지. 파울리는 혀를 찼다. 오늘의 그의 목적은 무기 밀수업자와 그의 접선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파티장까지 가봐야지.'

초대장이 있었더라면 편했겠지만, 그들이 접선 소식을 접한 건 바로 그제 아침이었다. 신분을 위조할 시간도 초대장을 구할 방법도 없다. 언제는 그렇지 않았냐마는 결국 개인재량에 맡겨버리는 정보부에 파울리는 이를 갈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누군가 두고 간 듯 청소도구가 담긴 트레이를 마치 제것처럼 끌며 복도를 움직인다. 청소요망. 팻말이 걸린 문앞에 도착한 파울리는 객실문 안쪽에서 대기했다.

그가 찾는 것은 적당한 키의 벨보이였다. 움직임이 한정된 청소원에 비하여 그들은 호텔의 곳곳에 동원된다. 언제나 손이 부족한 파티장에서 움직이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존재. 한명쯤 없거나 더 있어도 괜찮은 역활이란 흔하지 않다. 얼마를 그렇게 숨죽이고 있었을까. 텅 빈복도에 벨보이가 지난다. 자신과 비슷한 키. 심부름을 가는 듯 와인병을 든 모양새에 파울리는 쾌재를 질렀다. 파티장에 진입할 핑계까지 완벽하다. 대상이 지나가기 전 파울리는 문을 열어젖혔다.

"으악!!! 당신 뭡니까?! 부딪힐뻔....!"

급작스럽게 열린 문에 부딪힐 뻔 했던 벨보이가 와인병을 안은채 역성을 낸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사과한 파울리는 한차례 주변을 살핀 후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불길한 앞날을 예상한 건지 문고리를 잡고 버티던 벨보이였으나 부질없는 반항이었다. 파울리는 벨보이의 목을 졸랐다. 손톱을 세운 손이 부질없이 작업복을 긁는다.

컥, 커억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후 파울리는 초를 쟀다. 3.5초. 부실한지 생각보다 빨리 힘이 빠지는 몸을 들쳐메고 객실 안쪽으로 향한다. 비치된 바스가운의 허리끈을 풀러낸 파울리는 가장 먼저 벨보이의 눈을 가렸다. 그 후엔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유니폼을 벗겨낸다.

"좀 끼네."

아무래도 이번엔 눈대중이 빗나간 모양이었다. 벗겨낸 유니폼을 갈아입은 파울리가 타이트하게 붙는 핏에 두어번 팔을 휘두른다. 다행히 움직이는 데엔 별 무리가 없었지만 튿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할 듯했다. 혀를 찬 파울리는 이불에 둘둘 만 벨보이를 옷장에 쳐박았다.

-젤다.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인학 이름을 익힌 후, 화장실로 들어간 파울리는 왁스를 들어 헝크러진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하는 김에 잔소리를 듣던 수염도 말끔하게 깎아내고 눈을 내리깔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상이 완성된다.

"신발이 좀 아쉽군."

진짜 젤다가 발이 큰 편이라면 양말을 구겨넣어 신었겠지만, 아쉽게도 신발은 파울리가 신기엔 작은 쪽이었다. 뒷굽을 구겨신는 걸 고민해본 파울리는 차라리 신고 온 운동화 쪽을 택하곤 객실을 나선다. 떠나기 전 팻말을 청소중으로 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25층, 파티가 열리는 홀 앞에는 가드들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지?"

"심부름인데요."

자연스럽게 지나치려던 파울리느 그들의 질문에 들고있던 와인을 들어보였다. 부족하다고 연락이 와서. 파울리의 태연한 변명에 의심스런 눈빛을 한 가드 하나가 주방에 무전을 날린다. 그러나 파티중에 한팜 바쁠 주방이 연락을 받을리가 만무했다. 두번, 세번. 무전을 보내던 가드가 혀를 찬다.

"들어가봐."

결국 포기한 가드에게 파울리는 까딱 목례를 건넸다. 홀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두세걸음 걷자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 즉시 파울리는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와인병을 내려놓았다.

"어디..."

타겟은 어디있을까. 그는 익숙한 유명인사들 사이를 헤집었다. 지나가던 웨이터에게 샴페인이 든 쟁반을 대신 받아들자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다. 음식을 권하듯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를 몇번, 마침내 그가 타겟을 찾아낸 건 옥상정원에서였다.

사진으로 몇번이고 확인한 얼굴. 다행히 아직 접선은 시작되지 않은 듯 그는 혼자다. 파울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저, 샴페인....으앗!"

권하듯 내민 쟁반을 실수인 척 크게 흔든다. 길고 가는 잔의 특성상 세워진 잔들이 무너지는 것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순식간에 온몸에 술을 뒤집어쓴 상대가 인상을 찌푸린다.

"너..."

"괜찮으십니까?!"

"되었다."

타겟이 무언가 따지고 들려 했지만 그보다는 가드들이 빨랐다.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에 달려온 가드들이 손수건을 들어 타겟의 옷을 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이미 흠뻑 젖은 몸을 닦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너! 가드들이 미처 소리치기 전에 파울리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번이나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는 파울리의 사과에 웅성웅성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낼 순 없겠지. 주목받는 상황에 아득 타겟이 이를 가는 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객실에 여분의 옷이 비치되어있으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됐어."

씹어삼킬 듯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에 파울리가 의심할 사이도 없이 타겟이 등을 돌린다. 그 뒤를 다른 웨이터가 따르려하는 것을 파울리가 제가 책임지고 가겠다며 나서려던 때였다.

"너 말고, 너 따라와라."

멈춰선 타겟이 파울리를 콕 집어 지명하더니 다시 발을 옮긴다. 이게 웬 횡재냐. 쾌재를 지른 파울리는 웨이터를 밀쳐내고 위풍당당하게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준비된 게스트룸의 문앞에서 타겟이 멈춰선다.

"먼저 들어가라."

문을 연 타겟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사람 좋은 석유부자라고 했는데, 어딘가 정보가 틀린 거 같다. 파울리는 제게 주어진 정보를 정정했으나 의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소문과 다른 사람들은 무궁무진했다. 잘 나가는 신사가 더러운 취미를 즐기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소문이 자자한 약쟁이가 알고보니 멀쩡한 음험가였던 적도 있었다.

'...이자식은 어느쪽이지.'

"너희들은 대기."

최악의 상황이락 해봐야 남색가인 정도일까. 그래봐야 손도 대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는 파울리는 가드들을 물리는 타겟을 보며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이상을 감지한 건 침대 위에 묶인 인영을 발견했을 때였다. 아랍계 호인상의 남자. 182cm. 방금 전 자신이 샴페인을 쏟은 그 남자가 침대 위에 있다. 그럼 자신이 끌고 들어온 건...

"젠장!"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파울리는 뒤를 돌았지만 이미 객실문은 닫힌 후다. 느리게 걸쇠까지 걸어 잠군 타겟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정말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방해를 하는 군. 갈레라."

목 아래쪽으로 손을 가져간 남자가 천천히 타겟의 얼굴을 벗어던진다. 루치. 익숙한 얼굴을 보며 파울리는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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