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은 오랫동안 방치되어있었다. 부서진 문고리. 난장판으로 흩어진 세간은 분노한 사람들이 그곳에 왔었음을 증명한다. 바닥을 나뒹구는 떨어진 서랍은 비어있었고, 액자는 조각났으며, 그 안에 들어있던 단체 사진은 몇몇의 얼굴만을 뜯어 놓은 채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그저 시간만이 뽀얗게 쌓인 방. 그 방을 누군가 다시 찾은 것은 아주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끼익.
녹슨 경첩소리가 인사를 대신한다. 그러나 방문객들은 아주 조심스러워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열린 줄도 모르게 다시 문이 닫히고, 달빛이 고작인 상황이 되고서야 그들은 쓰고 있던 가면과 망토를 벗었다.
“필요한 것만 챙겨.”
가장 처음 입을 연 건 루치였다. 엉망인 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그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침대위로 엉덩이를 내린다. 그는 한때 이 방의 주인들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타인의 용건에 어울려주었을 뿐인 사람 같았다.
반면, 카쿠는 퍽 복잡한 표정으로 그가 앉은 침대를 응시했다. 바닷물이 들이쳤던 모양인지 검게 핀 곰팡이와 하얗게 오른 소금기로 뒤덮인 침구는 그가 직접 골랐던 것이다.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 아쉬워한 카쿠는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거, 남아있을지는 모르겠구먼.”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는 찾던 것들이 모두 남아있을 것을 확신했다. 처음부터 그럴 목적인 그들이었던 만큼, 중요한 것들은 침입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
책상 뒤의 벽, 콘센트를 뽑아내자 생긴 안쪽의 빈 공간. 곳곳에서 치밀하게 숨겨진 제 흔적들을 하나씩 수거한다. 그날 갑작스러운 작전 종료로 챙기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런 카쿠를 기다리는 루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다.
그에게 이 방은 의미가 없었다. 남긴 것이 없으니 챙길 것도 없다.
그래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전보벌레였다. 아주 오래 먹이를 공급받지 못해 죽어가는 전보벌레. 축 늘어진 그 벌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간헐적으로 ‘벨레.’ 하고 울었다. 부재중 연락이 있었다는 소리다.
‘누구지.’
지령은 각자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전보벌레로 이루어졌다. 아니면 브루노의 술집을 통한다. 그런 그들에게 방안에 둔 전보벌레는 장식용 그 이상도 아니었다. 호기심. 루치는 남겨진 메시지를 듣기로 했다.
-호롯호.
상비하던 간식을 전보벌레에게 내밀자 제 것을 빼앗긴 핫토리가 구룩구룩 불만스러운 소리를 낸다. 심술을 부리듯 전보벌레를 쪼는 핫토리를 말린 루치는 수화기를 들었다. 최소한의 기운을 차린 전보벌레가 입을 연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여보세요? 나다.
메시지를 남긴 건 아주 의외의 사람이었다. 전보벌레의 입을 빌려 방안을 울리는 목소리에 짐을 챙기던 카쿠는 손을 멈췄다.
-요즘 정신없이 바빠서 말이지. 아쿠아 라구나 때문에 아주 온 도시가 비상이야. 어쩐지 수위도 이전보다 높아진 것 같아서 무너진 도크들을 재건하는 김에 지대를 좀 더 높이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도시 수복이 끝난 이후지만. 덕분에 대패를 만져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지 뭐냐. 명색의 목수인데 매일 목장갑을 끼고 벽돌을 나르고 있어. 뭐, 금방 끝나겠지. 명색이 갈레라 아니겠어? 그럼 다음에 다시 전화하마.
메시지는 그렇게 끝이 난다. 도로 조용해진 방에선 핫토리조차 울지 않는다. 지금, 그거-하고 카쿠가 입을 떼려고 했을 때였다.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여보세요? 도시 수복이 대충 끝났다. 사소한 게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뭐 알아서들 하지 않겠냐. 참 3번가 핫도그가게는 아주 멀쩡해. 맛도 포함해서. 주인양반이 대비를 단단히 하고 갔던 모양이지. 하하. 내일부턴 부서진 도크 수리에 들어간다. 그럼.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여보세요. 1번 도크에서 사고가 있었어. 기중기가 무너졌는데, 그게 내 탓이라지 뭐냐. 아씨. 수리비를 갚기 전까진 술은 꿈도 못 꾸겠군. 어디 가서 마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외상값이 10만베리정도 있었는데....뭐 끝난 얘기인가. 빛을 덜었군.
-네 번째 메시지입니다. 오늘 1번 도크에 신입들이 들어왔다. 신입이라고 해봤자 다른 도크 애들을 당겨온 거지만, 덕분에 7번 도크엔 햇병아리들이 넘쳐난다. 얼굴만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데 크하하. 내가 아주 믿음직한 고참이라니까? 한동안은 재미있을 거 같아. 그럼.
-다섯 번째 메시지입니다. 갈레라에서 퍼핑톰 2호 제작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언가 깨달은 듯 잠긴 목소리로 끊어질 때도 있었지만, 메시지의 대부분은 신이 나있었고, 담담하게 오늘 하루를 자랑하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누군가에게. 애초의 목적도 잊은 채 그렇게 얼마를 듣고 있었을까.
-스물여덟 번째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는 내용이 없었다. 스물여덟 번째라고 소개한 이후로 전보벌레는 입을 닫았다.
“음? 오류인건가. 왜.”
조금 기다려봤지만 그러고도 한참, 이어지는 침묵에 카쿠가 고개를 기울인다. 메시지 재생이 끝나면 끝났다고 말을 할 터인데. 혹 죽어버린 건가 전보벌레를 살폈지만 벌레는 제대로 두 눈을 뜬 채였다. 그럼 왜. 수화기를 건들려는 카쿠를 루치가 막는다. 다시 한참의 침묵, 침묵, 그리고 그 후.
-....왜, 대체 왜 배신한 거냐.
전보벌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취한 듯 부정확한 발음으로 푸념하듯 메시지가 시작된다.
-함께 오랫동안 배를 만든 사이지, 우리는. 그런데 왜... 사실은 첩보부원이라고? 처음부터?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지! 동료인척 거기서 끝냈어야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심이었냐. 진심이 있기는 했었던 거냐!!! 왜, 대체 왜...
푸념에서 시작해 분노를 토해낸 메시지는 이윽고 후회로 끝이 난다. 전보벌레는 이제 울음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참고 삼켜내는 울음소리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메시지가 이어진다. 루치는 처음으로 이 방에 들어와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
-서른 다섯 번ㅉ......벨레ㅂ....
“지건.”
곧게 뻗은 손가락 아래 단단한 등껍질이 부서진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전보벌레의 시체를 보면서 카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한 거 아닌가. 어차피 곧 죽을 전보벌레였으니 그때까지는 두었어도 좋았을 걸.”
“불필요한 미련이다.”
그런 카쿠의 말을 단박에 잘라낸 루치가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점액질이 묻은 제 손을 닦으며 먼저 방안을 나서는 그 등에 카쿠가 한숨을 쉰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할 생각은 없는 듯 짐을 챙겨들고 그 뒤를 따랐다.
방은 다시 남겨졌다. 죽은 전보벌레와 텅 빈방. 다른 방문객이 도착할 예정은 없었다. 막 생긴 구두자국은 선명했지만 그 위로 다시 시간이 쌓여 흐려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잠겨가는 워터세븐과 함께할 것이다. 남겨진 것들은 보통 그런 법이었다.
-‘삐’소리 후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여보세요? 나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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