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뜬금없는 선언이었다. 내뱉은 루치마저도 왜 지금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는지는 정확히 알지못했다. 백설공주의 목에 걸린 사과조각처럼 내내 목구멍 안쪽에 걸려있던 말. 그가 웃을 때도 찌푸렸을 때도 하물며 제 아래서 허덕이는 얼굴을 보고있던 순간까지도 루치는 그 생각을 입안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끝내 삼켜내지 못했던 말이 숨을 몰아쉬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이다.
상대는 반응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치흔을 남기던 등이 잠시 움칠했을 뿐이다. 그 얼굴이 보고싶다고 루치는 생각했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그 고개를 돌리게 할 생각은 들지 않아서 기다리는 그를 밀치고 파울리가 움직인다.
"그러냐."
생각보다 담담한 음성이었다. 비켜봐 새꺄. 평소와 별 다를 것 없이 무겁다며 그가 구박을 건넨다. 루치는 요구대로 몸을 일으켰다. 빠져나가는 감각이 소름끼친지 파울리가 몸을 떤다. 옅게 돋은 소름을 핥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루치는 벗은 몸 위로 이불을 던져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울리는 머리맡을 더듬었다.
"내 옷."
그가 찾던 자켓은 현관 근처에 떨어져있었다. 벅벅 제 뒷통수를 긁은 파울리가 귀찮다는 듯 이불을 둘둘 두른채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징검다리마냥 줄줄이 떨어져있는 흥분의 흔적들은 발로 대충 밀어 한데 쌓아올렸다. 내것 네것 할것 없이 쌓인 옷가지가 산을 이뤘다.
"피울거냐?"
"아니."
파울리의 권유에 루치가 고개를 젓는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담배가 아닌 파울리의 의중이었다.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던 루치였으나 지금 이 순간 담배를 빼어무는 파울리의 생각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조그맣게 욕지거리를 내뱉기 전까지는.
"씨발."
상처받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떨리는 손. 루치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불을 붙이는 그 손가락을 아득아득 씹어 삼키고 잘게 경련하는 등 위에 이를 박고 싶었다. 루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기 위하여 입을 가렸다.
그래 이런게 사랑일리 없었다. 그는 파울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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