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목재 위로 차가운 못이 박힌다. 나무는 갈색, 못은 회색. 몇 번이나 망치로 내려쳐 제대로 박힌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이스버그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등허리에 맺혀있던 땀이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마찬가지로 땀투성이인 얼굴을 닦으려 했지만 손수건 또한 땀으로 흠뻑 젖어있어 별로 소용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눈으로 흘러들어간 땀이 따끔거린다. 아이스버그는 먼지투성이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찌푸려지는 눈 사이로 맑은 하늘이 들어온다. 하늘은 파란색. 구름은 흰색. 배를 건조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으니 완성까지는 넉넉히 잡아도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그는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를 계산해보았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조선섬 내에서 쓸 작은 곤돌라였다. 길게 잡아도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가 완성하고 나면 페인트를 바르는 것은 프랑키의 몫이었다.
‘기왕이면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싶지만.’
아이스버그는 아쉬운 손길로 뼈대가 잡힌 곤돌라를 쓸어보았다. 지난 달 고집을 부려 페인트를 칠했다가 프랑키에게 잔뜩 비웃음을 샀던 그였다.
“누가 그렇게 촌스러운 배를 타냐!”
“뭐가 어때서! 고동색과 빨간색으로 제대로 칠했잖아!”
“반대라구! 고동색으로 바탕을 주고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거지. 밥팅버그!”
네가 칠한 건 반대야! 프랑키의 지적에 아이스버그는 제가 완성한 곤돌라를 내려다보았다. 정말이냐는 듯 톰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재미있는지 크핫하 웃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 웃음을 그치고도 ‘눈에 띄니 사고는 나지 않겠구나.’ 하고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부정하지 않는 모습에 아이스버그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기엔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이 타고 다니는 곤돌라와 제가 만든 곤돌라가.
아이스버그는 선천적 색각이상자였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떠한 이상도 없는데 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톰이 알려주고 나서야 아이스버그는 제가 보는 세상의 이름이 잿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피워진 모닥불이 얼마나 따듯한 색을 내는지. 식탁 위의 음식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을 띄고 있는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비통함에 찬 울음소리까지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는 소외된 자였다.
“크핫하!! 걱정 말아라!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엄머, 됐어요. 그깟 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톰의 위로에 그렇게 대답했지만 궁금증은 어쩔 수 없었다. 코코로가 말하길 제 머리빛깔을 닮았다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 색인지. 프랑키를 닮았다는 하늘은 어떤 색인지. 제가 만드는 배는 어떤 빛을 띄고 있을지. 그렇게 무채색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던 날이었다.
“이봐 잠깐, 톰즈워커스가 어느 쪽인지 아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이스버그는 잠시 대패질 하던 손을 멈추었다. 요즘 들어 종종 겪는 일이었다. 톰이 바다열차를 완성한 뒤로 그의 작업실에는 손님이 많아졌다.
“그 뒤로 돌아가서 죽 직진해요! 가다보면 간판이 나올 테니까.”
좋은 일이지. 톰의 노력이 빛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이스버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대패를 놀리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협상을 통해 얻어온 목재였다. 오늘내로 손질을 마치고 톰에게 넘겨야했다.
“하여간, 이놈의 섬사람들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법이 없군.”
등 뒤의 손님이 투덜거린다. 그러나 이미 몇 번 겪어가며 온 덕인지 더는 말을 걸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으악! 아야! 누가 이런데다 못을 버리는 거야! 운이 없는 손님인지 가는 길에 폐선섬 쓰레기란 쓰레기에는 모두 걸려 넘어지는 듯하다.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리던 아이스버그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톰 오늘 외출한다고 했는데...’
뒤늦게 가봐야 아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뒤를 돌았을 때였다.
“아....”
아이스버그는 입을 가렸다. 마치 잉크가 번진 것처럼 손님이 머물던 자리에 흐릿하게 색이 번져있었다. 딛었던 발자국. 서있던 자리. 걸려 넘어진 자국까지 등 뒤엔 처음 보는 빛깔이 가득하다. 색. 색깔들. 대패를 놓친 것도 모르고 구경만 하고 있던 아이스버그는 한발 늦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 어디로 갔지?!”
그 사람을 확인해야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가진 사람을. 그렇게 무작정 색이 번진 길을 따라 달리던 아이스버그는 잠시 발을 멈췄다. 톰즈워커스의 장소를 물었으니 작업실로 갔겠지. 그리고 그는 작업실까지 가는 수십 개의 지름길을 알고 있었다.
‘제발, 제발 아직 있어라!’
돌아갔으면 어쩌지. 그는 넋을 놓고 바라보느라 지체한 시간을 후회했다. 아이스버그는 이를 악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배들을 뛰어넘느라 손바닥에 가시가 박혀도 아픈 줄도 몰랐다.
“톰..! 혹시 방금!!!”
“어 왔니? 차 마실래?”
그렇게 도착한 작업실은 낯설기 그지없다. 녹슨 금색의 문고리. 초록색 칠판.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 작업실을 가득 채운 흐릿한 색들이 손님이 이곳에 다녀갔음을 뜻했다. 그러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찻잔을 쥔 코코로뿐인 빈 작업실에 아이스버그는 혀를 찼다.
“방금 누가 오지 않았어요?!”
“아, 정부에서 사람이 왔다며 톰씨를 찾아 나갔는데?”
“젠장!”
“아이스버그?!”
뒤에서 당황한 듯 코코로가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다시 발을 놀렸다. 아직 섬을 벗어나지는 않았겠지. 희망을 가지고 달리는 도시 곳곳에 색이 번져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쫒아 달리던 아이스버그의 발이 멈춘 것은 돌아오는 길인 듯한 톰을 마주했을 때였다.
“톰, 헉,허억, 혹시, 헉, 손님....”
“아, 방금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다. 엇갈릴까봐 알려주러 온 게냐? 크하핫!”
갔구나. 가버렸구나. 힘이 풀려버린 다리에 그는 금빛 벽돌이 깔린 길 위로 주저앉았다. 한시도 쉬지않고 뛰어다닌 무리가 이제야 몰아서 오는 것인지 아이스버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좀처럼 세우지 못했다. 무엇하러 그렇게 달려왔냐며 사람 좋게 웃은 톰이 그를 가볍게 어깨에 짊어진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아이스버그는 두 눈을 가렸다. 손님을 만나고 온 톰은 색으로 가득했다.
‘톰, 나 오늘 그 사람을 만났어요.’
아이스버그는 그 말을 울음과 같이 삼켰다. 다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확실해진 다음에 소개해도 늦지 않는다. 다시 만나서, 다시 만나면. 도로 흐릿하게 색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그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아이스버그가 그 손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사흘 뒤였다.
“사법선이 공격받았다!!!”
“습격이다!!!”
프랑키가 만든 배들이 사법선을 습격한 죄로 꿇어앉혀진 광장의 한가운데. 만신창이가 되어 앉아있기도 힘든 몸으로 버티던 아이스버그의 귀에 목소리가 닿았다.
“안심하십시오. 여러분! 저희 CP5가 범인들을 체포 완료했습니다!”
움찔 몸을 떤 아이스버그가 반박하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였다. 새카만 코트를 입고 내려다보는 남자와 마주한 순간은 그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마치 기적 같았다. 방금 전까지 제가 보던 세상은 거짓이라는 듯 남자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색이 번져나간다. 말로만 듣던 오만가지 색으로 가득한 세상.
그러나 남자가 가장 처음 보여준 색은 붉은 색이었다.
“뭐하고 있어! 얼른 체포해!!!!”
“톰...!!!”
세상이 온통 새빨갛게 번졌다. 몇 번이고 쏘아진 총탄이 톰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이미 흘린 피도 많은 그는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아아아! 톰을 내놔!!”
그 뒤를 이은 프랑키까지. 처음 보는 강렬한 색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연이어 쓰러지는 가족들. 멍한 정신으로 아이스버그는 코코로가 자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코코로 할멈, 세상이 붉어.”
아이스버그는 두 눈을 뽑아버릴 듯 움켜쥐었다. 온통 붉어서. 아무래도 이번엔 붉은색만 가득한 세상에 떨어진 것 같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초이자 최후의 일생일대가 그대였습니다. 자나 깨나 예전에도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라스트 버진- RADWI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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