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모험가는 꿈을 꿨다. 입구를 지키는 열두기사상, 붉은 카펫이 깔린 입구, 높게 걸린 토르당의 초상화, 텅 빈 재판장, 원형으로 이어진 계단, 까마득한 망루.

-여기는 이슈가르드 교황청이다.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꿈이 시작된다. 악몽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게 악몽이 될 수 있을까.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모험가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당신이 눈앞에 서있다. 이미 그보다 강해진 자신에게 어떻게 기척 없이 다가올 수 있었는지 모험가는 의심하지 않는다. 당신임이 분명하고 또 당신이기 바라므로. 믿음에 화답하듯 그림자가 미소를 걸었다.

‘맹우여-.’

당신은 어디에든 있었다. 입구, 복도, 문서고에서부터 더러는 재판장이기도 했고 더러는 그 끔찍한 망루이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당신이 어디하나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모험가는 희미하게 마주 웃었다.

“오르슈팡.”

말은 힘이 된다. 오르슈팡. 그렇게 불린 그림자는 순식간에 그 껍질을 뒤집어썼다. 질긴 가죽을 덧댄 신발, 반짝이는 비늘 갑옷. 허리춤에 걸린 검, 신뢰가 가득한 얼굴.

불면의 날은 오래 되었다. 모험가는 오르슈팡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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