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손톱손질 해줄 뿐인 글조각~
-또각.
은색의 가위가 소리만큼이나 경쾌하게 움직인다.
-또각.
잔뜩 긴장한 채 손을 맡긴 레나의 어깨가 소리와 함께 간헐적으로 튀어 오른다. 손톱소지용 가위가 위험해봐야 얼마나 위험하겠냐마는 상대는 책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도련님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창에 비친 그림자로 구경하던 하스는 다음 손톱 위로 느릿하게 가위를 붙였다.
-또각.
이번에도 어김없이 놀란 몸이 튀어 오른다. 차가운 가윗날이 살을 스쳤는지 크게 놀라 손을 떠는 바람에 이번에야 말로 상처를 낼 뻔한 하스는 제 손위에 놓인 커다란 손을 조금 힘주어 쥐며 이름을 호명했다.
“레나.”
혀끝에서 굴린 이름은 이상하게도 항상 생각보다 달큰한 색을 띈다.
“응”
“이제 다 했어.”
하스는 쥐여진 손끝에 입 맞췄다. 반질거리는 손톱이 얇은 입술 위를 스치는 것을 얼마나 즐겼을까. 간질거림을 참을 수 없었는지 손을 빼낸 레나가 냉큼 이불 속으로 손을 감춘다.
“진짠데.”
하나만 더 하자. 하나만. 아이를 구슬리는 듯한 말투로 불룩이 솟은 이불 위를 쿡쿡 찔러보고 있을 때였다.
“피.”
불쑥 이불 속에서 튀어나온 레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제 손가락과 얼굴을 번갈아본다. 그 끝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하스는 제 입술을 핥았다. 날 것 특유의 비린내와 쓰라림이 강하다. 너무 잘 벼려둔 모양이네. 겉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삼키며 그는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상대를 보며 하스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풍성하고 긴 속눈썹이 처연하게 내리깔리노라면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는 잘 안다. 그래서 하스는 입술 끝에 방울지는 핏방울의 처분을 미루었고 조심히 뻗어지는 손을 보며 눈을 감았다. 예상처럼 나비마냥 가볍게 닿은 손끝이 조심조심 입술 위를 누른다. 그 다정한 손에 뺨을 부비며 하스는 예쁘게 웃었다.
“하나만 더 깎자. 착하지?”
은색 가위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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