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오르슈팡] 미완

잭모리스 2016. 11. 30. 00:51


 

 

순찰 중이던 위병이 발견했다고 한다.”

돌아온 것은 손끝이 닳은 장갑 한 짝뿐이었다.

 

 

다녀올게. 그 웃음이 그 목소리가 입김처럼 흩어진다. 다녀오게. 모험가를 배웅하며 오르슈팡은 크게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면 도도 통구이를 대접하지. 그 말에 모험가가 웃었기에 오르슈팡도 눈을 휘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고작 장갑뿐이었다.

 

오르슈팡은 피로한 눈가를 문질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어느새 밤이 지나고 새벽이 돌아오고 있었다. 저 길잡이 별처럼 나도 항상 여기서 기다리겠네. 자네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언젠가 그렇게 말했던 그 별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새벽이 밝아오는 데도 그에게는 아침이 찾아오지 않았다. 장갑만이 돌아온 그 날로부터 계속.

 

한 때 그의 죽음을 부정한 적도 있었다.

 

모험가님이요? 보름 전에 떠나신 게 끝이랍니다. 계속 연락을 드리고는 있지만 도통..”

 

그러나 혹시 언질을 남기거나 들어온 소식은 없는지 알기 위하여 동료인 라라펠을 찾았을 때.

 

모험가와 연락이 닿지 않네, 혹 근래에 본적이 있는가.”

 

오히려 그렇게 물어오는 알피노를 마주했을 때.

 

모험가의 부재는 현실이 되었다. 고작 장갑 하나를 남기고서, 모험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르슈팡은 그 이후를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서류를 처리했던가. 밥을 먹었던가. 잠을 청했던가.

 

내가 숨을 쉬었던가? 그대가 없는 땅 위에서?’

 

그는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려 제가 행한 결과물을 보았다. 바닥을 구르는 크리스탈들은 빛을 잃고 텅 비어있다. 그마저도 이내 먼지처럼 스러져 사라지는 것은 그 쓸모를 다했기 때문이라.

 

고작 하나뿐인 신도와 한 수레의 크리스탈이 불러낸 야만신은 작고 추했다. 바람의 실체화라는 것이 무색하게도 아무런 형태도 없는 그것은 물처럼 출렁이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거울처럼 깊고 새카만 액체. 그 앞에서 오르슈팡은 방패도 검도 들지 않았다.

 

야만신.”

 

그 부름에 샛노란 눈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짐승의 그것처럼 길게 갈라진 동공이 오르슈팡을 보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먹이감을 재어보는 듯한 행위. 오르슈팡은 본능적으로 저를 집어삼키려는 야만신을 짓밟았다. 찰박. 군화발에 짓이겨진 액체가 물보라처럼 튀어 올랐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가 바라던 것은 고작 저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바람을 읽은 야만신이 요동친다. 오르슈팡은 입을 열었다.

 

네게 신도를 주마.”

원한다면 이슈가르드 전체를. 넘어서 그 이상을. 그러니 나의-

 

실체화된 욕망을 마주한 눈알이 샐쭉 웃었다. 형태를 흐트러트리기 시작한 검은 물을 뚫고 불쑥 치솟은 흰 손이 그의 갑옷을 타고 올랐다. 손가락 마디가 선연하게 드러나는 희고 가는 손가락, 간절하고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듯 뻗어진 팔에 이어 물에 젖은 금빛 머리칼과 꿈에서도 잊지 못할 얼굴까지.

 

“---”

 

이름은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흩어졌다. 목 뒤를 감은 팔이 뱀처럼 조여온다. 오르슈팡은 길게 늘어진 속눈썹 아래 그늘을 응시했다. 맞닿은 입술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어내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맹우여. 나의 오랜-’

 

샛노란 눈동자가 저를 비웃는다. 모험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기억이 만들어낸 허상 앞에 오르슈팡은 무릎을 꿇었다.

 

신이여-.’

 

그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을 모두 버려서라도, 나는 그대를 연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