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얻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잭모리스 2015. 7. 8. 00:00





 흐린 날이었다. 딱히 오늘만이라고 할 것 없이 하늘은 언제나 그렇다. 언제나 비가 내리기 직전의 우중충한 날씨.


 돌아올 땐 한바탕 쏟아져 내릴지도 모르겠는 걸.


 그래서 나는 현관을 나서기 전, 의미없이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집안의 모든 접이우산은 모두 어느 한 구석엔가 살이 부러져 있는 채다. 개중 하나쯤은 멀쩡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하나를 찾기 위하여 모든 우산을 펴보는 일은 성가시기 그지없다. 나는 망가진 우산을 버리는 일을 오늘도 미뤘다.


성가신 장우산이 지팡이처럼 나보다 먼저 길을 짚는다. 징이 박힌 끄트머리가 보도블럭에 저를 갈아내는 소리가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것만큼이나 경쾌했다. 또각. 또각. 나는 부러 소리를 내기위해 우산을 앞뒤로 흔들었다. 어차피 비가 내리지 않는 시간의 우산이 하는 일이란 이 정도뿐이다.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길을 걷는 무료함을 덜어내어주는 정도. 그리고 그게 끝일터였다. 그야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을테니까.


나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간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W.잭모리스

 




오늘은 언제나 오늘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도, 우산 끝으로 두드리며 걷는 길도, 지나치는 강아지, 여학생이 놓쳐 구르는 동전, 오늘의 파격세일까지 모두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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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상. 같은 선택 반복. 같은 쇼핑. 강박적인 같음.

아주 사소한 다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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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너의 장례식이다. 나는 젖은 우산을 털었다.